아브라함(Abraham, 뜻; 열국의 아버지)

메소포타미아 갈대아 우르Ur 출신(창 11:28-31)으로 우상을 만드는 데라의 아들이며 나홀과 하란의 형제.

 

구약과 신약에서 아브라함

 

창세기 12장 1-4절 (하나님의 부르심과 땅과 자손, 복에 대한 언약)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히브리서 11장 8절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아브람이 출발할 때는 정확한 목적지를 모른 채 믿음으로 떠났고, 그가 가나안에 도착하고 나서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로 그 땅임을 인식하게 됨.(창12:5-7)

 

창세기 15장 6절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로마서 4장 2-3절, 11-13절 (새한글성경)

아브라함이 행위들 때문에 의롭다고 인정받았다면, 자랑거리가 있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이 이를 보시고 그를 의롭다고 여겨 주셨다.” 하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증표로 받았는데, 그것은 할례받지 않은 상태에서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은 것을 인증하는 것입니다. 할례받지 않은 채로 믿는 모든 사람의 조상이 되도록 한 것이지요. 그리하여 그들도 의롭다고 여겨지도록 한 것입니다. 또 아브라함은 할례받은 사람들의 조상이기도 합니다. 곧 할례만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할례받지 않은 상태에서 남긴 믿음의 발자국을 따라가기도 하는 사람들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나 그의 후손에게 ‘그가 세상의 상속자가 될 것이라.’ 하신 약속은 율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의 의를 통해서 온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율법 이전에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고, 이는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해당됨을 뜻함. 이는 유대인의 혈통이 아니라, 믿음이야말로 언약 백성을 결정짓는 기준.

 

*아브라함 언약과 세례, 특히 유아세례의 신학적 근거(각주1)

 

갈라디아서 3장 6-9절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야고보서 2장 21절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 야고보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행위로 증명되었다는 점을 강조.

 

바울(로마서, 갈라디아서)과 야고보는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칭의)과 의롭다 함의 증거로서의 행위(성화)를 각각 강조함

 

 

아브라함의 믿음

 

“he’emin” (הֶאֱמִן): 히브리어 ‘아만’(אָמַן) 동사의 히필(강의형), 즉 확고히 신뢰하다, 전적으로 의탁하다는 뜻.

단순한 ‘존재로서의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약속—곧 자손과 기업에 대한 언약을 확신하며 신뢰했다는 의미임. 

 

로마서 4장 20-21절

“그는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능히 이루실 줄 확신하였다”는 것은 곧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신실하게 성취하실 분이라는 데에 대한 전인격적 신뢰를 나타냄.

 

또 칼빈은 “믿음이란 단순히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하신 약속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생명을 의탁하는 것이다.”(『기독교 강요』 III.2.7)라고 했고, 헤르만 바빙크는 “믿음은 지식과 확신, 그리고 신뢰를 포함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하신 언약을 자신의 삶의 기초로 삼았다.”(『개혁교의학』 제4권, p.109)다고 봤다.

 

*아브라함도 동일한 복음을 믿었다(각주2)

 

 

유대교와 초대교회, 그리고 종교개혁자들의 시각

1. 유대교; 아브라함은,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의 시작점, 율법 이전의 순종과 믿음의 모범

2. 초대교회; 아브라함은, 믿음의 본보기이자 영적인 조상. 믿음의 여정의 상징으로 보며, 그 여정은 영혼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과정의 전형이라 해석하고 이삭을 바치는 사건은 그리스도의 희생의 예표(각주3)로 봄.(오리겐). 그는 은혜로 선택된 자로, 율법이 아니라 은혜로 구원받은 예시임(어거스틴)

3. 개혁주의;

“하나님은 세대 간에 언약을 유지하시며, 자녀들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받는다.”

 

  1. 아브라함 언약은 은혜 언약의 구체적 계시
    • 아담 이후 점진적으로 드러난 구속사의 연속 안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은혜 언약이 구체화되는 인물.
    • 율법 이전에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은 복음의 선포임. “아브라함은 그리스도를 멀리서 바라보았으며, 동일한 복음을 믿었다.”(칼빈)
  2. 모든 민족이 복을 받는다는 언약은 그리스도를 통한 복음의 보증
    • 창세기 12:3의 약속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통한 이방인 구원을 포함.

 

 

 

1) 아브라함 언약과 세례, 특히 유아세례의 신학적 근거

 

*할례; (신약에서 세례 = 새 언약의 표징)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고, 그 언약의 “표징”으로 할례를 명하심.
은혜 언약의 표징(sign)이며, 언약 공동체(covenant community)의 구성원됨의 표시. 아브라함의 자손, 즉 8일 된 유아에게도 적용됨 (창 17:12)  골로새서 2:11–12는 세례와 할례의 연속성을 명확히 연결함: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함께 살리심을 받았느니라.” 즉, 세례는 할례의 영적 실체, 즉 새 언약 공동체의 표징으로 이해됨.

 

*개혁주의 전통(특히 칼빈주의)은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1. 은혜 언약은 구약과 신약을 관통하는 동일한 본질을 가진 언약이다. 차이는 외적 형태와 방식이지, 본질은 동일(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7장 참조).
2. 구약에서 유아도 언약에 포함되어 할례를 받았듯이, 신약에서도 유아는 언약 공동체에 속한 자로 세례를 받을 수 있다.
3. 부모의 믿음 아래 있는 자녀는 하나님의 언약의 약속 안에 있는 자녀이며, 세례는 그 약속을 보증하는 하나님의 표와 인이다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에게… 하신 것이라.” (행 2:39)
칼빈은,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도 언약의 일부로 인정하셨고, 옛날에는 할례로 지금은 세례로 그들에게 그 약속을 인치셨다.”고 말한다(『기독교 강요』4권)

바빙크는, “세례는 주관적 신앙의 표현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인쳐진 언약의 표로 주어진다. 그러므로 신앙을 아직 표현할 수 없는 유아에게도 세례는 정당하게 주어진다.” 『개혁교의학』 제4권, p.525
(세례는 인간의 신앙 고백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의 표시이기 때문에, 유아의 능력 여부와 무관하게 하나님의 언약에 속해 있다면 세례가 허락된다.)

 

 

2) 아브라함도 동일한 복음을 믿었다

 

요한복음 8장 56절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갈라디아서 3장 8, 16절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바울은 창세기 12:3에 나타난 아브라함 언약 자체를 "복음"이라고 불렀으며 즉, 아브라함은 복음을 믿은 자, 그것도 그리스도를 통한 복음을 선취(先取)한 자이다.

 

아브라함은 육안으로 보지 않았지만, 믿음으로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았다는 뜻으로, 그리스도 중심의 구속사적인 복음을 구약의 아브라함이 이미 신앙의 본질로 받아들였음. 

복음은 신약에서만 존재한 것이 아니라 구약에서도 동일한 복음이 선포되었고, 아브라함은 그 복음을 그리스도의 약속 안에서 소망하며 믿었다. 

 

“구약의 성도들도 그리스도를 소망했으며, 그 믿음은 우리와 동일한 복음을 근거로 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에서 그리스도를 멀리서 바라보았고, 그분 안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칼빈의『기독교 강요』 II.10.2 

 

“아브라함은 구속의 날을 예언자처럼 멀리서 바라보며,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언약의 성취를 기대하였다. 그의 믿음은 단지 한 민족이나 땅의 유업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칼빈의 요한복음 8:56 주석 중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이 믿는 자들에게 전가된다. 어거스틴의《신국론(De Civitate Dei)》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언약은 "육적 이스라엘"이 아닌 "그리스도 안의 자손들"에게 성취되었다. 베자(Theodore Beza)의 갈라디아 주석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단지 민족적 번성에 대한 것이 아니며, 그것은 신자 전체와 교회의 구속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됨을 나타낸다.” (특히 “네 씨로 말미암아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복음 전파를 예시하는 것) 헤르만 바빙크의 개혁교의학 3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창조의 회복, 곧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죄에서 구속받는 복이다. 이 복의 근원은 오직 한 분, 그리스도 예수뿐이다.” (즉, 아브라함 언약의 복은 실제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이 누리는 구원, 곧 의롭다 하심과 하나님의 자녀됨을 의미) 헤르만 바빙크의 개혁교의학 4권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후손(seed) 안에서 메시아를 기대했고, 믿음으로 그분을 바라봄. 구약의 언약(특히 창 12, 15, 17장)은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될 복음적 약속이며, 아브라함은 그 복음을 신뢰함. 복음은 시대를 초월하여 동일하며, 아브라함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함을 받은 믿음의 조상.

 

 

3) 이삭은 그리스도를 예표함 (희생과 부활)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린 후에 다시 그를 데리고 올 것임 종들에게 말함(하나님께서 다시 살려내실 것이라는 믿음의 확신.)

 

창세기 22장 5절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히브리서 11장 18-9절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4) 횃불 사이로 지나가는 하나님

 

창세기 15장 17절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자손과 땅에 대한 언약을 재확인하시는 장면으로, 
당시 고대 근동에서 언약 체결 방식은 동물들을 반으로 쪼개 놓고, 당사자들이 그 사이를 지나가면서 “내가 이 언약을 깨뜨리면 이 동물처럼 될 것이다” 라고 맹세하는 식이었다.

 

1) 언약의 일방성; 아브람은 잠들어 있었고 언약 체결의 의식에서 참여하지 않았는데 하나님 자신이 타는 횃불(불)과 연기 나는 화로(구름)의 모습으로 홀로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나가셨다. 이는 언약의 성취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상징한다. 즉, 하나님이 당신의 약속을 스스로 책임지신다는 선언이다. 

 

2) 횃불과 연기; 불과 구름은 이후 출애굽 사건의 하나님의 임재 상징(불기둥과 구름기둥)과 연결된다. 언약의 하나님은 구속사의 하나님으로 이어진다.

 

3) 예표적 의미; 이 언약은 메시아 언약의 기초로서, 갈라디아서 3:16은 아브라함의 ‘씨’가 곧 그리스도라고 해석한다. 따라서 이 장면은 장차 그리스도를 통한 언약 성취를 예표한다.

 

4) 관련 신약 구절; 히6:13-18, 갈3:16

 

*렘34:18-20; (언약 위반에 대한 심판 경고) 송아지를 둘로 쪼개고 그 두 쪽 사이로 지나가며 내 앞에서 언약을 세웠으나 그 언약의 말을 실행하지 않은 사람들… 내가 그들을 그 쪼갠 송아지 같이 하리라.

*출24:3-8; 시내산 언약 체결(쌍방 언약)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눅22:20; (그리스도의 피로 새 언약)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5)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창12:10-20, 20:1-18)과 이삭(창26:6-11)이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것은 분명히 잘못된 행동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직접적으로 책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위험에 처했던 상대방(바로와 아비멜렉)에게 개입하여 사실을 알리신(창12:17-20, 20:3-7) 이유는?

 

1) 하나님의 주권적인 보호와 언약 신실성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맺으신 언약의 신실성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창 12:2-3)을 주셨다. 이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브라함과 사라, 그리고 이삭과 리브가의 생명과 순결이 보존되어야 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행동은 인간적인 연약함과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언약을 이루시려는 자신의 뜻을 꺾지 않으셨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들의 생명을 보호하시고, 그들의 아내들이 순결을 잃지 않도록 주권적으로 개입하셨다. 바로와 아비멜렉에게 직접 나타나시거나 재앙을 내리심으로써, 아브라함과 이삭을 보호하고 언약의 계보를 지키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 인간의 실수를 넘어 역사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2) 아브라함과 이삭의 믿음의 여정
창세기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믿음의 성장 과정을 보여주는 책이다. 그들은 완벽한 인물이 아니었으며, 때로는 두려움과 불신으로 인해 잘못된 선택을 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연약함을 아셨고, 즉각적인 심판이나 책망보다는 그들이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고 의지하도록 훈련하시는 과정을 보여주셨다. 이 사건들을 통해 아브라함과 이삭은 자신들의 계략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생존하고 언약이 성취된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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