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무신론자였다가 대학교 2학년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저의 주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때에 처음 읽었던 시편은 고통 가운데 울부짖고 괴로움을 토하는 다윗의 모습 뿐이었습니다.
그는 마치 피해망상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대적들의 모든 위협과 악인에 대한 억울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아직 주님과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저의 시편, 첫 인상이었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군대에 가고, 사회에 나와 회사를 다니면서 세상이 얼마나 비인격적인지를 체감하게 되었으며 주님의 온유한 성품에 대해 다시한번 묵상하게 되었고 비로소 다윗이 매일같이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부르짖었는지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시편 1편과 2편은 시편 전체의 서론의 역할을 맡습니다. '복이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로 시작하는 1편은 말씀을 묵상하는 경건한 개인의 삶을 지향하고, 2편은 하나님의 통치로 말미암는 왕권과 기름부은 메시아를 보여줍니다. 두 편 모두, 시편을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앞서, 참된 복의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 제시하고 있습니다.

저는 다윗의 시편들을, 다윗이 말하고 찬양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 초점을 맞춰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다윗이 시편에서 묘사하는 하나님은 다윗의 지극히 개인적인 고백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로서 성령께서 다윗을 통해 말씀하시고 또 성경 전체에서 일관되게 증언하시는 하나님일 것입니다.

1) 

3편에서 압살롬에게 쫓기는 다윗은 도망자 처지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셋째 아들이 반란을 일으켜 스스로 왕이라 칭하는 바람에 예루살렘마저 버리고 산으로 도망쳤습니다. 다윗 왕은 재위 기간 내내 내부의 반란과 블래셋, 암몬 족속 등 외부 대적들과 반복적으로 전쟁을 치뤘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문제를 즉시 제거해 주시는 방식으로 일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시편 3편 4절과 5절,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하나님은 다윗을 즉시 승리하게 하신 분이 아니라, 그를 잠들게 하시고 다시 일어나게 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고통과 환란 가운데서도 다윗에게는 분명히 부르짖을 대상이 명확했고, 그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셨습니다.

2) 

다윗은 대적자들과 악인들로 인해 고통 속에 갇혀 있는 사람으로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러 차례 탄식했지만, 하나님과 그 아름다운 영광을 바라보는 가운데 비로소 자기 자신을 바르게 보게 됩니다.

시편 8편 4절과 5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그는 영원한 도망자가 아니었습니다.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 자신을 귀하게 여기셨고 그 지으신 세계를 다스리는 소명을 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3) 

가장 놀라운 점은, 그가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처럼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내 하나님”이라 부르짖으며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 드린 이 고통의 신음소리조차 장차 오실 메시야, 곧 그리스도 예수의 고난을 예언적으로 담아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편 22편 1절,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리고 16절에서 18절,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이 묘사는 복음서의 수난 기사와 정밀하게 맞물립니다. 다윗의 개인적 고통이 성령의 계시 가운데 메시야의 고난으로 확장되었음을 보여 주며, 하나님께서는 의인의 고난조차도 구속사의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이러한 고백이 가능했던 이유는 서론에서 말한 바와 같이, 다윗이 고통 중에도 하나님의 통치와 의로움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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