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이 죄를 짓기 전에, 뱀은 이미 악했다. 그렇다면 그 악한 생각은 어디서 온 것일까? 이 질문은 단순해 보이지만, 신학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까다로운 문제 중 하나를 건드린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선하게 창조하셨다면, 악은 도대체 어디서 발원했는가.

 

첫 번째 대답은 어거스틴에게서 온다. 그는 마니교의 이원론, 즉 선과 악이 동등한 두 실체로 영원히 맞서 싸운다는 세계관을 정면으로 거부했다. 그의 답은 이것이었다. 악은 독립된 실체가 아니다. 악은 선의 결핍이다. 어둠이 빛의 부재이듯, 병이 건강의 손상이듯, 악은 본래 있어야 할 선이 빠져나간 자리에서 생겨난다. 이 설명은 신학적으로 중요한 방어선을 지킨다. 하나님은 악을 창조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천사는 선했다. 사탄도 처음에는 선하게 지음받았다. 그런데 그가 교만으로 하나님을 떠났을 때, 그 이탈 자체가 악의 발생이었다. 빛으로부터 등을 돌린 것, 그것이 어둠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면 뭔가 이상해진다. "악이 단순히 없음이라면, 왜 심판이 있는가? 결핍은 처벌의 대상이 아니지 않은가?" 이 물음이 정당하다. 만약 죄가 그저 선의 공백이라면, 그것은 죄라기보다는 부재에 가깝다. 그런데 성경은 죄를 그렇게 보지 않는다. 죄는 언약 파괴이고,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며, 하나님의 질서에 맞서는 적극적인 반역이다.

 

그래서 개혁주의는 두 번째 설명을 함께 붙든다. 죄는 결핍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실제적인 반역이고 부패다. 사탄의 악은 단순히 하나님을 떠난 상태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 등을 돌리는 데서 나아가, 하나님의 질서 자체를 전복하려 했다. 에덴의 뱀은 그저 뭔가를 잃어버린 존재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인간을 유혹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한 존재였다. 이것은 결핍이 아니라 반역이다.

 

두 설명을 나란히 놓으면 이렇게 된다. 악의 기원은 선의 결핍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이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떠났을 때 악이 발생했다. 그러나 그 악은 단순히 공백으로 남지 않고, 실제로 역사하는 반역과 부패의 힘이 되었다. 어둠의 비유와 반역의 비유가 동시에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죄는 "빛이 꺼진 상태"이면서, 동시에 "빛을 등지고 자기 왕국을 세우려는 행위"다.

 

한쪽만 잡으면 균형이 무너진다. "악은 결핍"만 강조하면 죄의 심각성이 약해진다. 죄가 그냥 뭔가 없는 상태라면, 인간은 그저 불완전한 존재일 뿐이지 심판받아 마땅한 반역자가 아니다. 반대로 "악은 적극적 힘"만 강조하면 이원론의 위험이 생긴다. 악이 하나님과 맞먹는 실체가 되어버린다. 개혁주의가 양쪽을 동시에 붙드는 것은 타협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죄의 실체를 온전히 담아내려는 시도다.

 

그래서 가장 균형 잡힌 표현은 아마 이것일 것이다.

악은 하나님이라는 빛을 떠난 결핍이며, 죄는 그 결핍 상태 속에서 하나님의 질서를 거부하는 실제적 반역이다.

 

뱀의 악한 생각은 무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선하게 창조된 존재가 하나님을 떠남으로써 생겨난 결핍이었고, 그 결핍이 능동적 반역으로 굳어진 결과였다. 그리고 그 반역은 에덴으로 걸어 들어왔다.

 

 

 

 

더 깊이 연구을 위한 참고문헌 추천;

1차 문헌 (Primary Sources)

어거스틴

Augustine of Hippo. Confessions. Translated by Henry Chadwick.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1.

Augustine of Hippo. The City of God against the Pagans. Translated by R. W. Dyson.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8.

Augustine of Hippo. On Free Choice of the Will. Translated by Thomas Williams. Indianapolis: Hackett Publishing, 1993.

 

칼빈

Calvin, Joh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Edited by John T. McNeill. Translated by Ford Lewis Battles. 2 vols.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60.

 

신앙고백서

Westminster Assembly.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Glasgow: Free Presbyterian Publications, 1994.

 

2차 문헌 (Secondary Sources)

개혁주의 조직신학

Bavinck, Herman. Reformed Dogmatics. Edited by John Bolt. Translated by John Vriend. 4 vols.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03–2008.

Berkhof, Louis. Systematic Theology. Grand Rapids: Eerdmans, 1938.

Frame, John M. The Doctrine of God. Phillipsburg: P&R Publishing, 2002.

 

악의 문제 및 신정론

Plantinga, Alvin. God, Freedom, and Evil. Grand Rapids: Eerdmans, 1977.

Plantinga, Cornelius, Jr. Not the Way It's Supposed to Be: A Breviary of Sin. Grand Rapids: Eerdmans, 1995.

 

어거스틴 연구

TeSelle, Eugene. Augustine the Theologian. New York: Herder and Herder, 1970.

Wetzel, James. Augustine and the Limits of Virtu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2.

 

사탄론 및 영적 존재

Boyd, Gregory A. God at War: The Bible and Spiritual Conflict. Downers Grove: InterVarsity Press, 1997.

 

 

 

덧붙여,

추천 우선순위

논지에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순서로 추리면:

  1. Plantinga, Not the Way It's Supposed to Be (2차, 악의 문제 ~) — "결핍"과 "반역" 두 개념을 일상 언어로 가장 잘 통합한 책. 에세이 톤과도 잘 맞음.
  2. Augustine, On Free Choice of the Will (1차, 어거스틴) — 악의 기원과 자유의지 문제를 직접 다룸.
  3. Bavinck, Reformed Dogmatics vol. 3 (2차, 바빙크) — 개혁주의 죄론의 표준 참고문헌.
  4. Calvin, Institutes II.1–4 (1차, 칼빈) — 원죄와 인간 부패에 관한 칼뱅의 핵심 본문.
  5. Plantinga, God, Freedom, and Evil (2차, 악의 문제 ~) — 악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다루는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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