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오래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두 구절 사이에서 멈추게 되는 때가 있다. 한쪽에서는 전도자가 조용히 말한다.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 그리고 다른 쪽에서는 예수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염려하지 말라." 두 구절을 나란히 놓으면 묘한 긴장이 생긴다. 슬퍼하라는 건지, 슬퍼하지 말라는 건지. 감정을 품으라는 건지, 내려놓으라는 건지.
이 긴장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두 가지 방향 중 하나를 택한다. 어떤 사람은 두 구절 사이의 간극을 그냥 넘어간다. 성경이 워낙 방대하니 이런 불일치쯤은 있을 수 있다고 애써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한 구절을 다른 구절로 눌러버린다. 예수님이 염려하지 말라 하셨으니, 슬픔도 염려도 다 내려놓는 것이 신앙이라고 결론 내린다. 그 결과 감정은 신앙생활에서 점점 다루기 불편한 것이 되어간다.
그런데 성경을 좀 더 천천히, 그리고 원문의 결을 따라 읽다 보면, 이 긴장이 사실 모순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성경은 감정에 대해 서로 어긋나는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감정을 우리보다 훨씬 정밀하게 보고 있다. 우리가 하나의 덩어리로 묶어버리는 "슬픔"과 "근심"을, 성경의 언어는 기능에 따라 섬세하게 구분한다. 그 구분의 기준은 감정의 종류나 강도가 아니라, 감정이 향하는 방향이다.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문을 들여다보면, 우리말로 똑같이 "근심"이나 "슬픔"으로 번역된 단어들이 사실은 전혀 다른 영적 실재를 가리키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 세 단어 — kaʿas, merimnaō, lypē — 를 따라가다 보면, 성경이 인간의 내면을 얼마나 정밀하게 읽고 있는지가 드러난다.
첫 번째 결: kaʿas, 인생의 쓴맛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침통함
전도서 7장 3절은 낯선 선언으로 시작한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으니." 여기서 "슬픔"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카아스(כַּעַס, kaʿas) 는 단순한 울적함이 아니다. 이 단어에는 상함, 괴로움, 인생의 쓰라림이 농축되어 있다. 70인역이 이 단어를 때로 분노를 뜻하는 티모스(θυμός, thymos)로 옮길 만큼, 그 감정의 무게는 표면적인 슬픔을 넘어 존재의 깊은 곳까지 내려간다.
전도서 7장은 초상집과 연회를 나란히 놓는다. 연회에는 웃음과 노래와 흥겨움이 있다. 초상집에는 정적과 무게가 있다. 전도자는 그 두 자리에서 사람이 얻는 것이 다르다고 말한다. 연회의 소음 속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이 초상집의 침묵 속에서는 배워진다. 삶의 유한함, 지금 내가 살아가는 방식의 의미, 그리고 결국 무엇이 남는가 하는 질문들이다.
kaʿas의 침통함이 웃음보다 낫다는 역설은, 이 감정이 사람을 가볍지 않게 만든다는 데 있다. 인생의 유한함과 허무를 회피하지 않고 정직하게 대면할 때 생기는 이 무거운 마음 상태는, 결국 사람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리로 이끈다. 전도자가 권하는 슬픔은 그래서 불안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을 깊어지게 하는 슬픔이고, 지혜를 낳는 슬픔이다. 전도서의 슬픔은 병이 아니라, 인생을 깊이 살게 하는 영적 중력이다. (실존적 슬픔과 지혜를 낳는 고통)
두 번째 결: merimnaō,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마음의 분열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이 반복적으로 경계하신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 속에는 메림나오(μεριμνάω, merimnaō) 라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의 뿌리를 따라가면 '나누다(merizō)'와 '마음(nous)'의 결합이 보인다. 즉, 메림나오는 마음이 갈라진 상태, 분열된 내면을 가리킨다.
우리는 자주 이 구절을 감정 억제의 명령으로 받아들인다. 걱정하는 마음이 생기면 안 된다, 불안해지는 것은 신앙이 부족한 증거다, 라는 식으로.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그 맥락 안에서 천천히 읽으면, 이것이 감정 자체를 금하는 말이 아님을 알게 된다. 빌립보서 4장 6절은 그 의미를 한층 더 또렷하게 열어준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하나님께 아뢰라." 염려의 반대말로 등장하는 것이 눈에 띈다. 그것은 평온함이 아니라 기도다.
예수님이 경계하신 것은 단순히 걱정하는 감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미래를 스스로 통제하려는 불안으로 인해 하나님께 향해야 할 마음이 세상으로 분산되는 영적 상태였다. 하나님의 손을 붙잡지 못하고 두 방향을 동시에 바라보는 눈, 하나님 없이 닫혀버린 감정 — 그것이 메림나오의 본질이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이 염려를 단호히 물리쳐야 할 대상으로 보셨다. (신뢰의 결핍에서 나오는 불안)
세 번째 결: lypē, 방향이 운명을 결정하는 슬픔
고린도후서 7장 10절에서 바울은 슬픔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슬픔의 존재가 아니라 그 방향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근심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여기 쓰인 루페(λύπη, lypē)는 가장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의미의 슬픔이다. 고통, 비탄, 애통 —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온갖 슬픔을 담는 그릇이다.
바울은 같은 단어를 두 번 쓰면서 그것을 둘로 나눈다. 하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으로, 사람을 깊게 만들고 회개로 이끌어 생명에 이르게 한다. 이것은 kaʿas의 침통함과 맥을 같이 한다. 다른 하나는 "세상 근심"으로, 자기 자신 안에 갇혀 결국 사망에 이른다. 이것은 merimnaō의 분열된 마음과 닮아 있다. lypē는 그 자체로 중립적이다. 방향이 결국 그것의 정체를 결정한다.
이 두 구분을 나란히 놓으면 하나의 선이 그어진다. 전도서의 슬픔(kaʿas)은 하나님을 향해 열려 있는 감정이다. 마태복음의 염려(merimnaō)는 하나님 없이 닫혀버린 감정이다. 성경이 하나를 권하고 다른 하나를 금하는 것은 그런 이유이다. 감정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이 향하는 방향의 문제다.
전환 — 감정을 제거하지 않고 데려가는 것
요한복음 16장 20절에는 예수님의 말씀이 하나 더 있다.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예수님은 여기서 근심하지 말라고 하지 않으셨다. 근심이 올 것임을 인정하셨다. 제자들은 근심할 것이다. 그런데 그 근심이 기쁨으로 바뀔 것이라고 하셨다. 감정이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데려가는 곳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이 감정을 다루시는 방식이었다. 없애는 것이 아니라, 전환시키는 것이었다.
세 단어를 나란히 놓으면 그 전환의 구조가 선명해진다. kaʿas는 인생의 무게를 외면하지 않고 짊어지는 자의 침통함이다. 그것은 지혜의 시작이다. lypē는 방향을 가진 슬픔이다. 하나님을 향하면 생명이 되고, 자기 안에 갇히면 사망이 된다. merimnaō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마음의 분열이다. 이것은 극복해야 할 상태다.
슬픔이라도 하나님을 향해 흘러가면 지혜가 된다. 염려라도 하나님께 가져가면 기도가 된다. 근심이라도 회개로 이어지면 생명이 된다. 그리고 그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면, 같은 감정이 사람을 소진시키고 결국 죽음으로 데려간다.
결 — 성경이 던지는 가장 오래된 질문
처음의 긴장이 이제 다르게 보인다. 전도서와 마태복음은 서로 모순된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전도서는 지혜를 낳는 슬픔에 대해 말하고 있었고, 마태복음은 관계를 단절시키는 염려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성경은 같은 이름의 감정을 쓰면서, 그 감정이 어디로 향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것으로 보고 있었다.
성경의 결론은 단순하지 않다. "슬퍼하지 말라"가 아니라, "네 슬픔이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를 물어보라. 성경은 감정을 억압하거나 제거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감정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감정에 끌려가지도 않으면서, 감정을 하나님께로 데려가는 것 — 그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려는 것이다.
어쩌면 성경이 서로 모순처럼 보이는 본문들을 나란히 두는 것은, 우리에게 더 정밀한 질문을 배우게 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슬픈가, 염려하는가 묻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이 감정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라고 묻는 법을 훈련시키는 것이다. 근심의 언어를 아는 것, 그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건네는 영적 분별의 초대다. 이 감정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것이 성경이 감정 앞에서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깊은 질문이다.
더 깊이 연구을 위한 참고문헌 추천
성경 신학 / 감정 신학
1. Roberts, Robert C. Spiritual Emotions: A Psychology of Christian Virtues. Grand Rapids: Eerdmans, 2007.
감정을 신앙적 덕목과 연결해 분석하는 책. 슬픔·염려·기쁨의 신학적 기능을 심리학적 언어로 풀어냄. 본문의 "감정의 방향성" 논의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음.
2. Matthew Elliott. Faithful Feelings: Rethinking Emotion i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Kregel Academic, 2006.
신약성경 안에서 감정이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분석한 학술서. "감정은 억압의 대상이 아니라 신앙의 구성 요소"라는 논지가 본문의 핵심 주장과 정확히 일치함.
3. Bray, Gerald. God Is Love: A Biblical and Systematic Theology. Wheaton: Crossway, 2012.
하나님의 감정(신적 파토스)과 인간 감정의 관계를 신학적으로 다룸. 욥기·시편 논의에 배경 신학을 제공함.
4. Pemberton, Glenn. Hurting with God: Learning to Lament with the Psalms. Abilene: Abilene Christian University Press, 2012.
5. Strawn, Brent A., ed. The Bible and the Pursuit of Happiness: What the Old and New Testaments Teach Us about the Good Lif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2.
6. Vroegop, Mark. Dark Clouds, Deep Mercy: Discovering the Grace of Lament. Wheaton: Crossway, 2019.
전도서 주석 / 연구
1. Longman, Tremper, III. The Book of Ecclesiastes.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1998.
전도서 7장 3절의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는 구절에 대한 신뢰할 만한 주석. 지혜 문학 안에서 감정의 위치를 상세히 다룸.
2. Bartholomew, Craig G. Ecclesiastes. Baker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Wisdom and Psalms.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09.
전도자의 인간 경험 관찰을 현대적 해석학으로 풀어낸 주석. 전도서의 실존적 긴장을 신학적으로 해소하는 방식이 본문 에세이의 구조와 잘 맞음.
3. Fox, Michael V. A Time to Tear Down and a Time to Build Up: A Rereading of Ecclesiastes. Grand Rapids: Eerdmans, 1999.
고린도후서 주석 (7:10 본문)
1. Barnett, Paul. The Second Epistle to the Corinthians.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1997.
2. Harris, Murray J. The Second Epistle to the Corinthians.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Eerdmans, 2005.
3. Thrall, Margaret E.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Second Epistle to the Corinthians. 2 vols.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Edinburgh: T&T Clark, 1994–2000.
산상수훈 / 마태복음 연구
1. Stott, John R. W. The Message of the Sermon on the Mount. The Bible Speaks Today. Downers Grove: InterVarsity Press, 1978.
마태복음 6장 25–34절 "염려하지 말라"에 대한 명료하고 깊이 있는 해석. 염려의 신학적 의미를 신뢰와 관계의 언어로 풀어냄.
2. Davies, W. D., and Dale C. Allison Jr.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Gospel According to Saint Matthew. 3 vols.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Edinburgh: T&T Clark, 1988–1997.
3. France, R. T. The Gospel of Matthew.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2007.
4. Nolland, John. The Gospel of Matthew.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Eerdmans, 2005.
성경 해석학
1. Fee, Gordon D., and Douglas Stuart. How to Read the Bible for All Its Worth. 4th ed. Grand Rapids: Zondervan, 2014.
성경의 장르별 읽기 방법을 안내하는 입문서. 본문 에세이가 다루는 "긴장처럼 보이는 구절들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해석학적 질문에 직접적인 방법론을 제공함.
2. Vanhoozer, Kevin J. Is There a Meaning in This Text? The Bible, the Reader, and the Morality of Literary Knowledge. Grand Rapids: Zondervan, 1998.
성경 해석의 철학적·신학적 토대를 다루는 학술서. 본문 에세이의 해석 구조—표면적 긴장을 더 깊은 통일성으로 풀어내는 방식—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함.
히브리어·헬라어 원어 사전 및 어휘 연구
1. Brown, Francis, S. R. Driver, and Charles A. Briggs. A Hebrew and English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Oxford: Clarendon Press, 1907. Reprint, Peabody, MA: Hendrickson, 1996.
2. Kittel, Gerhard, and Gerhard Friedrich, eds.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Translated by Geoffrey W. Bromiley. 10 vols. Grand Rapids: Eerdmans, 1964–1976. (λύπη 및 μεριμνάω 항목 참조)
3. Koehler, Ludwig, Walter Baumgartner, and Johann J. Stamm. The Hebrew and Aramaic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Translated by M. E. J. Richardson. 2 vols. Leiden: Brill, 2001. (כַּעַס 항목 참조)
4. Liddell, Henry George, Robert Scott, and Henry Stuart Jones. A Greek-English Lexicon. 9th ed. Oxford: Clarendon Press, 1996.
5. Louw, Johannes P., and Eugene A. Nid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Based on Semantic Domains. 2nd ed. New York: United Bible Societies, 1989.
70인역(LXX)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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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Pietersma, Albert, and Benjamin G. Wright, eds. A New English Translation of the Septuagint.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7.
한국어 문헌
1. 박영선. 『하나님의 열심』. 서울: 무근검, 2017.
신앙과 감정, 인간 경험의 신학적 의미를 설교적 언어로 풀어낸 책. 본문 에세이의 독자층(신앙 있는 일반 성인)에게 가장 접근하기 쉬운 한국어 참고문헌.
2. 김회권. 『산상설교: 하나님 나라의 윤리』. 서울: 복있는사람, 2009.
마태복음 6장을 하나님 나라의 신뢰 윤리로 해석. 염려 금지 명령의 신학적 맥락을 상세히 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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