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질문들은 답을 찾을수록 더 깊어진다. "개혁주의는 옳은가?"라는 물음도 그렇다. 표면에서는 단순한 교파 비교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들어가면 훨씬 크고 오래된 질문과 마주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어떻게 다스려 오셨는가? 그 권위는 어디서 왔고, 누가 그것을 해석할 수 있는가? 이것은 교회론과 계시론, 그리고 권위론 전체를 건드리는 문제다.
구약 이스라엘의 풍경
구약을 읽다 보면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세 가지 권위가 공존하고 있었음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 첫째는 기록된 말씀이다. 율법서, 언약 문서, 선지자들의 기록이 그것이다. 둘째는 살아있는 공동체다. 장로와 제사장, 선지자들이 그 말씀을 해석하고 삶에 적용했다. 셋째는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직분자들이다. 모세, 사무엘, 그리고 수많은 선지자들이 매우 강한 권위를 행사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셋의 관계다. 누가 가장 위에 있었는가?
열왕기하 22장을 펼쳐보자. 성전 수리 도중 율법책이 발견된다. 그것을 읽은 요시야 왕은 옷을 찢으며 회개한다. 제사장들이 수백 년 운영해 온 종교 체계, 왕이 누려온 권력, 그 모든 것이 발견된 책 한 권 앞에서 무너진다. 왕이 제사장 위에 있는 것도, 제사장이 백성 위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이 왕과 제사장 모두 위에 있었다. 요시야 개혁은 그것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스라엘이 "성경만 있으면 된다"는 식의 공동체는 아니었다는 점도 분명하다. 신명기 17장을 보면, 분쟁이 생겼을 때 제사장과 재판장에게 가도록 규정되어 있다. 말씀을 해석하는 공동체가 반드시 필요했다. 선지자들의 권위도 대단했다. 하지만 그 권위는 언제나 빌려온 것이었다. 선지자는 "내 생각에는"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라고 했다. 자신이 권위의 근원이 아니라, 권위를 전달하는 통로였다.
예수님과 성경
신약으로 넘어오면 이 구조는 더욱 선명해진다. 예수님은 당시 가장 강력한 종교 권위인 산헤드린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으셨다(마26장, 막14장). 오히려 반복해서 성경을 근거로 삼으셨다. "기록되었으되"라는 말이 복음서 곳곳에 박혀 있다. 요한복음 10장 35절에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이것은 단순한 인용이 아니다.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이 감히 넘보지 못하던 권위들, 즉 공회와 대제사장과 랍비 전통보다 성경의 권위를 더 높은 기준으로 삼으셨다. 제도가 말씀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제도를 판단한다는 것이었다.
초대교회, 그리고 두 갈래 길
초대교회는 이 긴장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사도들은 계속 구약 성경을 근거로 논증했다. 그러나 동시에 공동체의 해석, 세례 문답, 신앙고백의 초기 형태, 예배 규범 같은 것들도 이미 존재했다. 즉 "성경 한 권 들고 각자 읽으면 된다"는 식의 개인주의적 성경주의는 초대교회와 거리가 멀다. 공동체가 있었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 있었고, 합의된 고백이 있었다.
이 지점에서 역사의 길이 갈라진다. 로마 가톨릭은 이렇게 읽었다. 성경과 사도전승과 교회의 해석권이 함께 권위를 구성한다. 교회가 정경을 확정했으므로, 교회는 성경과 분리될 수 없는 권위를 가진다. 개혁주의자들은 다르게 읽었다. 교회가 정경을 확정한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가 성경에 권위를 부여한 것이 아니라, 이미 권위 있는 것을 공인한 것이다. 성경은 교회 위에 있고, 교회는 성경 아래에 있다.
신앙고백서는 어디 서 있는가
여기서 먼저 한 가지 오해를 걷어낼 필요가 있다. 개혁주의가 말하는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은 흔히 생각하는 "성경만"(Solo Scriptura)과 다르다. 종교개혁자들은 교회도, 신앙고백도, 교사도 필요 없다고 말한 적이 없다. 오히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말씀을 보존하고, 가르치고, 해석하게 하신다고 믿었다.*1
다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교회와 신앙고백과 교사는 모두 실제적인 권위를 가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종속적인 권위다. 그것들은 성경을 대신하는 권위가 아니라 성경을 섬기는 권위이며, 언제나 성경에 의해 검증되고 심판받아야 한다. 개혁주의가 말하는 "오직 성경"은 교회를 부정하는 구호가 아니라, 오직 성경만이 오류 없는 최종 심판자라는 선언이다.
여기서 한 가지 날카로운 질문이 따라온다. "성경만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고백서를 절대시하는 것 아닌가?" 정직하게 말하면, 이 위험은 실제로 존재했다. 17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는 정통주의 시기, 일부 지역과 일부 교회 문화에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사실상 성경처럼 취급되었다. 고백서의 문장이 성경의 문장을 대신하는 순간들이 있었다.*2
그러나 개혁주의의 공식적인 입장은 언제나 달랐다. 고백서는 성경이 아니다. 고백서는 성경을 가장 잘 요약한 문서일 뿐, 성경과 동등한 권위를 갖지 않는다. 오직 성경만이 무오하고 최종적이다. 따라서 원칙상 구조는 분명하다.
성경
↓
신앙고백과 교리
↓
교회 공동체
↓
개별 신자
반대가 아니다. 고백서는 성경을 해석하는 도구이지, 성경을 대체하는 권위가 아니다. 물론 반대쪽 위험도 있었다. 고백서를 무시하다가 성경적 정체성 자체를 잃어버린 흐름도 역사 안에 있다. 자유주의 신학이 걸어간 길이 그것이다.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전통은 두 극단을 동시에 경계해 왔다. 고백서 절대주의도, 고백서 무시도, 둘 다 개혁주의의 답이 아니다.
개혁주의는 과연 본질에 가까웠는가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오자. 개혁주의는 구약과 초대교회의 본질에 가까워졌는가? 공정하게 보면, 개혁주의가 복원하려 했던 것은 한 가지 핵심 원칙이었다. 기록된 말씀은 교회보다 높은 최종 권위를 가진다. 이것은 요시야 시대에도 그랬고, 예수의 사역 안에서도 그랬고, 사도들의 논증 방식 안에서도 그랬다. 칼빈이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발견하려 했던 것도 바로 이 원칙이었다. 개혁자들의 자기 이해는 새로운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교부들과 사도들의 원래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 복원의 시도는 분명히 중요한 무언가를 짚었다. 그러나 동시에 솔직하게 인정해야 할 것도 있다. 초대교회는 개혁주의가 때로 불편해한 것들, 공동체적 해석의 전통, 살아있는 권위의 연속성, 예전의 무게를 함께 가지고 있었다.*3 "성경만"을 외치는 것이 그 모든 것을 단순하게 대체하지는 않는다.
구약과 초대교회가 실제로 살았던 구조는 이렇게 생겼다.*4
하나님의 계시
↓
기록된 말씀
↓
교회 공동체
↓
신앙고백과 교리
↓
개별 신자
개혁주의는 이 구조에서 기록된 말씀의 자리를 제대로 붙들려 했다. 그 점에서는 역사적 본질에 가까이 닿았다. 그러나 그 말씀이 언제나 공동체 안에서, 고백과 예배의 전통 안에서 살아왔다는 사실을 얼마나 진지하게 품었는가, 그것은 여전히 물어볼 수 있는 질문으로 남는다.
웨스트민스터 전통은 이 긴장을 이렇게 표현해 왔다.
교회는 필요하다. 신앙고백도 필요하다. 그러나 둘 다 성경 아래 있다. 오직 성경만이 오류 없는 최종 심판자이다.*5
이 문장은 쉬운 말처럼 보이지만, 역사 안에서 이것을 실제로 지켜내는 일은 언제나 어려웠다. 그리고 그 어려움 자체가, 이 질문이 왜 오늘도 살아있는지를 말해준다.
각주
*1.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장 6항,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은 성경에 명백히 기록되어 있거나 선하고 필연적인 추론으로부터 도출될 수 있다.
이것은 Sola Scriptura의 핵심이다. 하지만 바로 이어서 보면
예배와 교회 정치에 관한 여러 사정들은 인간의 일반적 행동과 사회의 질서에 따라 기독교적 지혜로 규정될 수 있다.
즉 성경만 던져주고 각자 알아서 하라는 구조가 절대 아니다. 교회의 질서와 판단이 필요하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31장, 여기는 더 직접적이다. 공의회와 회의(councils and synods)에 대해, 요약하면:
교회 회의는 신앙 문제를 판단하고, 양심의 문제를 해결하며, 하나님의 예배와 교회 질서를 규정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모든 공의회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라고 말한다. 이게 개혁주의 특유의 균형이다.
공의회 필요
그러나 무오하지 않음
교회 권위 인정
그러나 최종 권위 아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5장 교회론, 여기서는 아예
교회 밖에는 구원의 일반적 가능성이 없다(out of which there is no ordinary possibility of salvation)
라고 말한다. 물론 이것은 "교회에 등록 안 하면 지옥 간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반적으로 교회를 통해 은혜를 베푸신다는 의미이다. 즉 개혁주의는 교회를 매우 중요하게 본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154문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구속의 은혜를 전달하시는 일반적인 수단은 무엇인가?
답:
말씀, 성례, 기도이다.
155문
말씀은 어떻게 구원을 위해 효과적으로 되는가?
답:
성령께서 말씀을 읽고 특히 설교하는 일을 통해 역사하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읽기(reading)"와 더불어 "설교(preaching)"가 강조된다는 점이다. 즉 교회의 공적 사역이 중요하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88문
그리스도께서 구속의 은혜를 우리에게 전달하시는 외적·통상적 수단은 무엇인가?
답:
말씀과 성례와 기도이다.
즉 신자 혼자 성경만 읽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 말씀 선포
- 성례
- 기도
를 통해 은혜가 전달된다고 가르친다.
칼빈은 더 강하게 말한다
Extra Ecclesiae gremium nulla est speranda peccatorum remissio, nec ulla salus.
Non potest habere Deum Patrem, qui Ecclesiam non habet matrem.
교회의 품 밖에서는 죄 사함도, 구원도 기대할 수 없다
교회를 어머니로 갖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가질 수 없다. (기독교강요 4권 1장 1절)
다시말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교회를 어머니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다.
칼빈이 인용한 것은 초대교부인 Cyprian of Carthage(키프리아누스)의 말이다. 키프리아누스의 원문;
Habere iam non potest Deum patrem qui Ecclesiam non habet matrem.
교회를 어머니로 갖지 않는 자는 더 이상 하나님을 아버지로 가질 수 없다.
칼빈은
- 교회 필요
- 목사 필요
- 공적 설교 필요
- 신앙고백 필요
를 모두 인정한다.
종교개혁자들은 교회도, 신앙고백도, 교사의 가르침도 불필요하다고 말한 적이 없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 말씀을 보존하고 선포하게 하시며, 성도들을 가르치고 양육하신다고 믿었다. 다만 교회와 신앙고백과 교사의 권위는 모두 성경 아래 있는 종속적 권위이며, 오직 성경만이 오류 없는 최종 심판자이다.
*2. 17세기에서 18세기에 걸친 개혁파 정통주의 시대는 신학의 전성기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다. 이 시기 신학자들은 교리를 정교하게 다듬고, 논리적으로 체계화하고, 이단의 공격에 맞설 수 있도록 방어선을 쌓았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프란시스 투레틴이다. 그의 신학 체계는 읽다 보면 법률 문서를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명제와 반론, 답변과 증명이 치밀하게 맞물려 있다. 교리를 보호하고, 이단을 막고, 논리의 허점을 남기지 않으려는 의지가 모든 문장에서 느껴진다. 이것은 분명히 장점이었다. 신학이 흐릿해지면 교회도 흐릿해진다. 교리의 경계가 분명해야 공동체가 지켜진다. 정통주의 신학자들이 쌓아올린 체계는 그 이후 수백 년 동안 개혁주의 교회들의 뼈대가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슬며시 생겨났다.
어떤 시점부터, 방향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본래의 흐름은 이랬다.
성경 → 교리
성경을 읽고, 그것을 신학적으로 정리한 것이 교리다. 교리는 성경에서 나온다.
그런데 정통주의가 깊어질수록 현장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교리 → 성경
성경을 읽기 전에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이미 말해놓았으니, 성경은 그것을 확인해주는 자료가 된다. "웨스트민스터가 이미 답했다"는 전제 위에서 성경을 펼치는 것이다.
그러면 설교의 구조도 달라진다. 원래라면 이렇게 되어야 한다.
성경 → 웨스트민스터 → 설교
그런데 실제 목회 현장에서는 이렇게 흘러가기도 했다.
웨스트민스터 → 성경 증명 구절 → 설교
성경 본문이 출발점이 아니라, 고백서의 명제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쓰이는 것이다. 공식 교리가 그렇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문화가, 분위기가, 실제 관행이 그렇게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더 쉽게 보인다. 구원론 논쟁이 붙으면 사람들은 로마서 9장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3장을 먼저 펼쳤다. 성찬 논쟁에서는 고린도전서 11장보다 고백서 29장이 먼저 인용되었다. 교회 정치 문제에서는 사도행전보다 고백서 조항이 더 자주 등장했다. 이것이 공식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다. 고백서는 성경을 정리한 문서이고, 잘 작성된 고백서는 성경의 내용을 충실하게 담고 있다. 그러나 논쟁의 출발선이 성경이 아니라 고백서가 되는 순간, 무언가가 조용히 뒤집어진다. 성경이 고백서를 검증하는 것이 아니라, 고백서가 성경 읽기를 안내하는 것이 되어버린다.
19세기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 이야기는 그래서 흥미롭다. 찰스 하지와 B.B. 워필드 같은 학자들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깊이 사랑했다. 고백서에 대한 그들의 신뢰는 확고했고, 그것을 지키려는 의지도 분명했다. 그러나 그들은 동시에 한 가지를 계속 강조했다.
"고백서는 성경 때문에 권위를 가진다."
이 말은 단순해 보이지만, 실은 매우 중요한 구별이다. 고백서가 권위 있는 이유는 고백서 자체가 훌륭해서가 아니다. 고백서가 성경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권위를 가진다. 그러므로 고백서의 권위는 성경에 의존한다. 고백서가 성경을 틀리게 해석했다면, 그 부분의 고백서는 틀린 것이다.
프린스턴 학자들은 이 구조를 유지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성경
↓
고백서
이 화살표의 방향이 바뀌지 않도록.
이 시대의 이야기가 오늘날에도 낯설지 않은 이유가 있다. 좋은 신학 체계는 언제나 성경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 체계가 너무 정교해지고, 너무 완성된 것처럼 보일 때, 사람들은 성경보다 체계를 먼저 손에 쥐기 시작한다. 체계가 성경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체계를 섬기는 모양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개혁주의의 이름을 달고 있지만, 개혁주의의 정신과는 반대 방향으로 걷는 일이다.
*3. "개혁주의가 불편해한 것이 아니라, 성경보다 우위에 놓이는 전통을 경계한 것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4. 이 구조는
- 개인주의를 피하고
- 교권주의를 피하고
- 고백서 절대주의를 피하고
동시에
- 성경 최종권위를 유지한다.
*5. 이 지점이 로마 가톨릭, 동방정교회, 개신교회가 가장 크게 갈라지는 핵심 쟁점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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