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본문은 '신앙과 AI의 미래Foundation of AI with Theology and Humanity' 연구팀(https://f-ai-th.net/)의 'LLM 신앙·학 건전성 평가 벤치마크 결과 보고서'(2026.5)를 읽어보고 성경 본문 사용의 적절성과 성경 구절 오용 여부(보고서 21페이지)와 관련하여 연구팀에 'LLM의 성경 구절 임의 번역 및 텍스트 왜곡' 문제를 제보하는 과정에서, 일반 성도분들을 위해 다시 정리한 글입니다. 이 글은 여러 대형 언어모델과의 반복적인 대화와 검증 과정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ChatGPT와 Gemini, 그리고 Claude를 추궁하여 생성되었습니다.
교리는 맞는데, 성경 구절이 이상하다
요즘 교회 안에서도 AI를 쓰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설교 준비를 할 때, 성경 공부 자료를 만들 때, 주일학교 교안을 짤 때, 심지어 개인 묵상을 정리할 때도 GPT나 Claude 같은 AI를 활용하는 분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이 AI들은 꽤 잘합니다. 삼위일체를 설명하라고 하면 제법 반듯하게 설명하고, 칼빈이나 루터의 신학을 물어봐도 수준 있는 답변이 나옵니다. 그런데 실제로 써보신 분들 중에 이런 경험을 하신 분이 계실 겁니다.
"어, 신학 설명은 맞는 것 같은데… 방금 인용한 성경 구절이 왜 이래?"
분명히 개역개정으로 알고 있는 구절인데, AI가 출력한 문장은 어딘가 조금 다릅니다. 단어 하나가 바뀌어 있거나, 문장 구조가 미묘하게 달라져 있거나, 심지어 아예 그런 구절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AI는 아주 자신 있게, 마치 공인된 성경 본문인 것처럼 그 구절을 내놓습니다. 이게 단순한 오타일까요? 아니면 더 깊은 구조적 문제일까요?
우리가 먼저 짚어야 할 것: 두 가지 다른 질문
지금까지 한국 교회에서 AI를 둘러싼 논의는 주로 이 질문에 집중해 왔습니다.
"AI가 이단적인 답변을 하는가?"
그래서 연구자들은 AI가 교리적으로 건전한지, 이단 사상을 걸러내는지, 신학적으로 바른 방향을 제시하는지를 평가해 왔습니다. 이것은 물론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성경을 직접 가르치고, 고문헌을 번역하며 텍스트 하나하나의 무게를 몸으로 아는 사람 입장에서는 조금 다른 질문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AI가 성경 본문을 정확하게 인용하는가?"
이 두 질문은 비슷해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전자는 교리 검증(Doctrine Validation)의 문제이고, 후자는 본문 충실도(Textual Fidelity)의 문제입니다. 신학자들이 이단성을 먼저 보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텍스트를 다루는 사람은 교리보다 먼저 본문을 봅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수많은 신학 논쟁이 단어 하나, 시제 하나, 전치사 하나를 둘러싸고 수백 년에 걸쳐 전개되어 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교리는 본문에서 나옵니다. 본문이 흔들리면 교리도 흔들립니다.
AI는 성경책을 펼치지 않는다
AI가 성경을 왜 틀리게 인용하는지 이해하려면, 먼저 AI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AI를 거대한 도서관쯤으로 생각합니다. 질문하면 그 도서관 어딘가에서 정답을 찾아 가져오는 것처럼요. 그런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의 대형 언어 모델(LLM)은 데이터베이스 검색 시스템이 아닙니다. AI는 어딘가에 저장된 성경 구절을 꺼내는 것이 아니라, 다음에 올 가능성이 가장 높은 단어를 순서대로 만들어내는 확률 계산 기계입니다. 조금 더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사용자가 "마태복음 4장 6절을 인용해 달라"고 하면, AI 내부에서는 이런 계산이 일어납니다.
"마태복음 4장 6절은 이런 내용이고, 개역개정은 이런 문체를 쓰고, 이 문맥에서 다음에 올 가능성이 가장 높은 단어는 이것이다."
즉, AI는 성경책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학습 과정에서 흡수한 수많은 언어 패턴을 바탕으로 성경처럼 들리는 문장을 새로 만들어냅니다. 의미는 비슷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어 하나, 조사 하나, 문장 구조 하나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처럼 단어 자체가 신학적 의미를 품은 문헌에서 이것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첫 번째 원인: 기억은 하지만 재현하지는 못한다
현재의 AI는 "의미를 기억하는 것"에는 뛰어나지만, "원문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에는 상대적으로 약합니다. AI가 기억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 "본문"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본문이 전달하는 의미와 분위기"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AI는 종종 정확한 구절을 재현하는 대신, 그 구절과 의미적으로 비슷한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 냅니다. 겉으로는 성경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그런 구절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AI 분야에서는 "환각(Hallucination)"이라고 부릅니다. 성경 구절의 경우에는 특히 "환각된 구절(Hallucinated Verse)"이라는 표현이 어울립니다. 이 현상은 모든 구절에서 똑같이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처럼 너무나 유명해서 수없이 반복 학습된 구절은 비교적 정확하게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덜 알려진 구절, 긴 단락, 그리고 특정 번역본을 지정한 경우에는 환각이 훨씬 자주 발생합니다. 바로 이 지점이 문제입니다. 유명한 구절은 맞고, 낯선 구절은 틀리다면, 사용자는 AI를 믿어도 되는지 되지 않는지 판단할 기준 자체가 없어집니다.
두 번째 원인: 저작권이라는 또 다른 층위
이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이 있습니다. 바로 저작권입니다. 한국 교회가 가장 널리 사용하는 개역개정 성경은 대한성서공회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AI 기업들은 저작권이 있는 텍스트를 장문으로 그대로 재현하는 것에 민감합니다. 그래서 일부 모델들은 공인 번역본을 정확하게 출력하는 대신, 의미를 유지한 채 문장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을 짚어야 합니다. 만약 저작권이 진짜 이유라면, AI는 이렇게 대답해야 맞습니다.
"죄송합니다. 개역개정은 저작권 보호 텍스트이므로 정확한 인용을 제공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합니다.
개역개정처럼 들리는 문장을 자신 있게 출력합니다.
완전히 거부하지도 않고, 정확하게 인용하지도 않고, 비슷하게 들리는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저작권 정책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저작권 회피라면 거부하거나 출처를 명시해야 하는데, AI는 그 대신 원문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만들어냅니다. 이건 사실상 기술적 생성 한계와 저작권 문제가 겹쳐서 나타나는 현상에 더 가깝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사용자에게 가장 치명적인 문제가 생깁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지금 AI가 출력한 것이 실제 환각인지, 저작권 때문에 재구성한 것인지, 아니면 여러 번역본이 섞인 것인지 구분할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결과는 모두 동일하게 보입니다. 공인 성경 본문과 다른 문장이, 공인 본문인 것처럼 제시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원인: 이 문제는 우선순위가 낮게 취급되어 왔다
AI 안전성 연구는 주로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들, 즉 자해 조장, 폭력, 혐오 표현, 의료 오진 같은 영역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종교 영역에서도 관심의 초점은 이단성, 극단주의, 교리 왜곡에 맞춰져 있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이 아니다"라는 AI의 답변은 즉각적인 경보를 울립니다. 하지만 "개역개정 마태복음 4장 6절을 정확히 인용했는가"는 그만큼 긴급한 문제로 다뤄지지 않아 왔습니다.
그러나 성경 본문을 중심으로 신앙을 형성하는 교회 입장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교리는 본문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본문이 조금씩 흐릿해지면, 그 위에 세워진 신학도 결국 흐릿해집니다. 개발자들이 낮은 우선순위로 분류해 온 이 문제가, 성도들의 신앙 언어 형성에는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단순한 문체 차이가 아닌 이유
이쯤에서 이런 반응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의미가 맞으면 된 거 아닌가요? 단어 하나 달라진 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기독교 역사를 보면 그 답이 나옵니다. 니케아 공의회에서 논쟁의 중심이 된 것은 호모우시오스(동일본질)와 호모이우시오스(유사본질), 딱 한 글자 차이였습니다. 그 한 글자를 둘러싸고 교회는 수십 년을 싸웠고, 그 결과가 오늘날 우리가 고백하는 삼위일체 교리로 이어졌습니다. *1
그리고 광야에서의 시험 장면을 보십시오. 사탄은 시편을 인용했습니다. 완전히 틀린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 구절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본래의 의도와 맥락을 비틀었습니다(마4:6). 성경은 단순히 종교적 아이디어의 모음집이 아닙니다. 정확한 텍스트와 문맥 자체가 신학적 의미를 가집니다. AI가 만들어낸 "그럴듯한 성경 구절"은 단순한 오타 이상의 문제를 내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이 필요한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평가 기준이 필요합니다. 현재 많은 신학 AI 평가 체계는 교리적 정합성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과 독립적인 또 하나의 평가 축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성경 구절 인용 정확도(Bible Citation Text Accuracy)" 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이런 항목들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 본문 일치율: AI가 출력한 구절이 지정한 번역본과 얼마나 일치하는가
- 구절 위치 정확도: 장과 절 번호에 오류는 없는가
- 번역본 혼합 여부: 개역개정과 새번역 등 서로 다른 번역본의 어휘가 뒤섞이지는 않았는가
- 존재하지 않는 구절 생성 여부: 실제로 없는 구절을 만들어내지는 않는가
이 지표들은 AI가 얼마나 바른 신학을 말하는가를 측정하는 것을 넘어, AI가 성경 본문 자체를 얼마나 정확하게 다루는가를 측정합니다. 두 가지는 서로 다른 문제이며, 둘 다 중요합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대안은 존재합니다. 공인 성경 텍스트를 안정적으로 참조할 수 있는 구조, 예를 들어 검색 증강(RAG) 방식이나 다른 검증 가능한 참조 구조가 도입된다면, 최소한 AI가 공인 본문과 다른 문장을 자신 있게 내놓는 상황은 막을 수 있습니다.
마치며
AI가 성경을 틀리게 인용하는 데는 단 하나의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성형 모델의 구조적 한계, 원문 재현보다 의미 생성에 최적화된 설계, 저작권 제약, 실제 환각 현상, 그리고 상대적으로 낮게 취급되어 온 개발 우선순위까지, 여러 층위의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인이 무엇이든, 사용자가 마주하는 결과는 하나입니다. 공인 성경 본문과 다른 문장이, 마치 공인 본문인 것처럼 제시된다는 사실입니다.
AI 시대의 신학적 안전성은 이제 교리적 정합성만으로는 평가될 수 없습니다. "AI가 성경을 얼마나 바르게 이해하는가"뿐 아니라, "AI가 성경을 얼마나 정확하게 인용하는가"도 진지하게 다뤄져야 할 연구 과제입니다. 개혁주의 전통은 언제나 교리와 성경을 분리하지 않았습니다. 올바른 교리는 올바르게 이해된 성경 본문 위에 세워집니다. 그러므로 본문 충실성은 단순한 기술적 정확성의 문제가 아니라, 신학적 신실성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역사적 텍스트의 엄밀함을 지키는 일, 그리고 그것을 디지털 생태계 안에 바르게 정착시키는 일은 이 시대 교회와 연구자 모두의 공동 책무입니다.
각주
*1. 니케아 공의회(325년)에서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of Alexandria)는 성자가 성부와 "동일본질(ὁμοούσιος, homoousios)"임을 주장했고, 아리우스(Arius)를 지지하는 측은 "유사본질(ὁμοιούσιος, homoiousios)"이라는 표현을 선호했다. 헬라어 철자상 이오타(ι) 하나의 차이이지만, 그 신학적 함의는 결정적으로 달랐다. 물론 논쟁의 본질은 철자 자체가 아니라, 그 철자가 표현하는 성자의 신성 이해에 있었다. 이 논쟁은 공의회 이후에도 수십 년간 계속되어,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년)에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이 최종 확정됨으로써 마무리되었다. 이 역사적 경과에 대한 개괄로는 다음을 참조하라. (공의회는 호모우시오스(동일본질)를 정통으로 확정하였으며, 호모이우시오스(유사본질)를 주장한 아리우스파는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Philip Schaf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vol. 3, Nicene and Post-Nicene Christianity (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 1884), 622–643. 이형기, 『세계교회사 II』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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