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님께 눈이 있는가 — 히브리서 4:12~13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선언한다.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4:13).

헬라어 원문은;

πάντα δὲ γυμνὰ καὶ τετραχηλισμένα τοῖς ὀφθαλμοῖς αὐτοῦ(panta de gymna kai tetrachēlismena tois ophthalmois autou)

"모든 것(πάντα)이 그의 눈들(τοῖς ὀφθαλμοῖς αὐτοῦ, ophthalmos) 앞에 벌거벗고(γυμνὰ) 목이 젖혀져 드러나 있다(τετραχηλισμένα)" *1

 

특히 τετραχηλισμένα(tetrachēlismena)는 신약에서 이곳에만 쓰인 희귀한 단어로, 레슬링에서 목이 젖혀져 제압된 모습이든 제물의 목이 드러난 모습이든, 완전히 노출되어 숨길 수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2

 

그렇다면 하나님께 육체의 눈이 있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영이시며(요4:24) 피조물처럼 몸에 갇히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눈"은 하나님의 전지성(omniscience)과 감찰, 심판적 통찰을 인간의 언어로 표현한 의인화, 정확히는 신인동형론적(anthropomorphic) 표현이다.*3 이 구절은 앞 절과 하나의 흐름을 이룬다. 히4:12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 생각과 뜻을 찔러 쪼갠다. 즉, 말씀이 인간의 내면을 해부하고, 히4:13에서 그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 감출 수 없이 드러난다.*4 즉, 말씀의 해부와 하나님의 감찰은 한 메시지다.

 

 

2. 성경의 언어와 하나님의 적응

성경에는 하나님의 손, 팔, 귀, 코, 눈 같은 표현이 무수히 나온다. 이것을 모두 육체 기관으로 읽으면 성경 자신의 증언과 충돌한다. 칼빈은 이를 하나님의 "적응"(accommodation)으로 설명했다. 하나님은 유모가 아이에게 옹알이하듯, 인간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와 이미지로 자신을 낮추어 계시하셨다. 신인동형론은 하나님을 피조물로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무한하신 하나님이 유한한 우리에게 자신을 알리시는 은혜의 방식이다.*5

 

 

3. 개혁주의는 납작한 문자주의가 아니다

여기서 오해 하나를 걷어내야 한다. 성경을 진지하게 믿는다는 것이 모든 표현을 문자 그대로 읽는다는 뜻은 아니다. 개혁주의 해석학의 근간은 문법-역사적 해석(grammatical-historical interpretation)이다. 본문의 장르, 문맥, 문법, 역사적 배경, 저자의 의도, 그리고 성경 전체의 통일성을 함께 살핀다. 역사 서술은 역사로, 시는 시로, 비유는 비유로 읽는다. 묵시문학의 상징성을 존중하고, 신인동형론은 하나님의 속성을 표현하는 언어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어떤 것은 문자적으로, 어떤 것은 묘사와 비유로, 어떤 것은 구속사적·영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관점 자체는 개혁주의와 충돌하지 않는다. 다만 결정적 차이가 있다. 무엇이 문자이고 무엇이 비유인지를 독자가 취향대로 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판단은 본문 자체의 장르와 문맥, 성경 전체의 증언이 내린다.*6

 

 

4. 창세기의 엿새(6일) — 하나의 시금석(試金石, touchstone)

창세기 1장의 "날(day)"이 좋은 예다. 개혁주의 안에는 이 날을 24시간의 실제 하루로 보는 견해가 강하게 존재해 왔고, 많은 보수적 개혁주의자들이 이를 지지한다. 동시에 개혁주의권 안에서 날-시대 견해, 문학적 틀 견해, 유비적 날 견해도 진지하게 논의되어 왔다. 그러나 어떤 입장이든 넘을 수 없는 선이 있다. 하나님이 무로부터 온 세상을 주권적으로 창조하셨다는 것,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는 것, 아담과 하와, 타락과 죄의 역사성이 구속사와 복음 이해에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창세기 1장은 현대 과학 교과서로 쓰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종교적 상징이나 신화로 축소되어서도 안 된다. 개혁주의 해석은 단순 문자주의도, 자유주의적 해체도 아니며, 본문이 의도한 대로 읽으려는 해석이다.*7

 

 

5. 교부들과 개혁자들은 어떻게 읽었는가

히브리서 4장의 "눈"을 교회는 처음부터 육체적으로 읽지 않았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는 말씀이 마음의 동기까지 찔러 쪼개고, 하나님의 감찰 앞에 인간의 내면이 남김없이 드러난다고 설교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이 감각기관으로 "본 후에 아시는" 분이 아니라 항상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라고 강조했다.*8 오리게네스 역시 이 표현을 문자로 읽지 않고 모든 피조물을 꿰뚫는 신적 통찰로 이해했다. 다만 그의 해석 전반은 때로 본문을 떠난 과도한 알레고리로 흘렀다는 평가를 함께 받는다.

*[정확하게는, 정통 교회 해석의 주류는 이런 표현을 하나님께 육체 기관이 있다는 뜻으로 읽지 않았다는 것이다.]

 

칼빈은 바로 그 자의적 알레고리를 경계하면서도, 하나님의 손과 눈 같은 표현을 적응적 계시로 읽었다(Calvin’s Commentary on Hebrews 4, 1840-57). 존 오웬은 히브리서 주석(Owen's Exposition of Hebrews, 1862)에서 이 "눈"을 하나님의 전지성과 심판권, 거룩한 감찰로 풀며, 사람은 죄를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영혼 전체가 벌거벗겨져 있다고 썼다.*9

 

여기에 균형이 있다. 교부들이 성경의 영적 의미를 풍성하게 읽으려 한 것은 옳았다. 개혁주의가 경계하는 것은 영적 의미 자체가 아니라 본문의 원래 의미를 무시한 자의적 영해(알레고리, allegory)다. 오히려 개혁주의는 신약이 구약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읽는 방식, 구속사적 성취, 언약의 흐름을 해석의 핵심으로 여긴다. 우리가 교부와 개혁자들을 살피는 이유도 그들이 권위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해석이 성경 전체의 증언과 교회의 공적 검증을 통과해 온 지혜이기 때문이다.

 

 

6. 메츠거의 질문 — 본문과 독자 사이

브루스 메츠거는 평생 사본 간의 차이와 원문 회복, 신약 본문의 전달 과정을 연구한 본문비평(textual criticism)의 대가였다. 그런데 그의 작업이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있다. 본문을 확정하는 문제와 본문을 해석하는 문제는 다르다는 것이다. 사본 차이가 거의 없는 본문에서도 해석의 차이는 크게 벌어진다. 그 이유는 본문이 불명확해서라기보다, 독자가 자신의 문화와 전통, 전제와 욕망을 가지고 본문에 다가가기 때문이다.*10

 

현대 해석학은 이 독자의 위치성을 강조한다. 개혁주의는 이 관찰을 무시하지 않는다. 인간은 죄인이라 편견을 가지고 읽는다는 것, 그래서 개인의 해석은 언제든 오류일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진지하게 인정한다. 그러나 개혁주의는 거기서 "의미는 독자가 만든다"는 결론으로 건너가지 않는다. 독자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과 의미의 상대주의는 다른 문제다.

 

 

7. 교파는 왜 갈라졌는가

교파 간 차이도 마찬가지다. 교회가 갈라진 것은 사본이 달라서가 아니다. 같은 성경을 놓고 해석 방법, 교리의 우선순위, 성례 이해, 교회 정치 구조가 달랐고, 여기에 역사적·정치적 상황, 언어와 문화의 차이, 그리고 인간의 죄성과 교만, 전통 고수가 얽혔다. 개혁주의 내부만 보아도 장로교, 개혁교회, 일부 침례교는 모두 성경의 권위를 높이지만 세례와 교회 정치에서 갈라진다. 이것을 "모두 제멋대로 해석했기 때문"이라고 조롱하는 것은 너무 단순하다. 그러나 개혁주의적으로 말하면, 이 모든 차이는 인간의 유한성과 죄성이라는 역사적 조건에서 비롯된 현실이지, 성령께서 본문에 여러 개의 참된 의미를 두셨다는 증거가 아니다.

 

 

8. 하나의 의미, 다양한 적용

여기가 이 글의 중심이다. 개혁주의는 성경의 궁극적 저자가 성령이심을 믿는다. 인간 저자들이 각자의 언어와 문체와 상황 속에서 기록했지만, 그 모든 성경을 감동하신 분은 성령이시다. 그렇다면 본문은 독자가 임의로 생산하는 무한한 의미의 장이 아니라, 성령께서 의도하신 참된 의미를 가진 계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 9항은 이를 이렇게 못 박는다. "성경의 참되고 충만한 의미는 하나이며, 여러 가지가 아니다"(The true and full sense of any Scripture … is not manifold, but one). 여기서 의미(sense)와 적용(application)의 구분이 결정적이다.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은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수천 가지 방식으로 적용된다. 그러나 그 명령의 의미 자체가 독자마다 전혀 다르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11 의미는 하나이나 적용은 다양하다.*12

 

그러므로 개혁주의 해석학의 이상(理想,  ideal)은 교파 간 차이가 끝없이 벌어지는 원심운동이 아니라, 성령께서 본문에 두신 하나의 참된 의미를 향한 구심운동, 곧 수렴(convergence)이다. 실제로 교회사는 분열만 보여주지 않는다. 초대교회와 종교개혁과 오늘의 복음주의는 삼위일체,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십자가와 부활,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이라는 중심 진리에서 놀라운 공통분모를 형성해 왔다.*13

 

 

9. 구성인가, 발견인가

그렇다면 물어야 한다. 성경의 의미는 독자가 구성(construct)하는 것인가, 하나님이 주신 의미를 발견(discover)하는 것인가. 개혁주의의 대답은 분명하다. 의미는 하나님께서 본문 안에 두신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겸손히 발견해야 한다. 그래서 해석은 "내가 본문을 어떻게 느끼는가"에서 끝나지 않는다. 성경 저자는 무엇을 말했는가, 성령께서는 이 본문으로 무엇을 계시하셨는가, 성경 전체는 이 본문을 어떻게 비추는가, 초대교회와 종교개혁의 신앙고백은 어떻게 이해했는가, 그리고 내 문화와 전제가 본문 이해를 왜곡하고 있지는 않은가 — 이것이 더 근본적인 질문들이다.

 

 

10. 성령의 조명과 해석의 안전장치

성령의 조명(illumination of the Holy Spirit)을 말한다고 해서 각자가 "성령께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며 본문을 마음대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개혁주의는 성령의 조명과 함께 여러 겹의 안전장치를 둔다. 원어와 문법, 문맥, 역사적 배경, 성경 전체의 통일성과 신앙의 유비, 교회의 역사적 신앙고백, 초대교회와 종교개혁자들의 해석, 공동체적 검증, 그리고 겸손한 자기 교정. 이 장치들을 통해 성경 해석은 개인의 직관이나 시대정신에 끌려가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객관적 계시 앞에 자신을 굴복시키는 과정이 된다.

 

 

11. 왜 교회에 이것이 사활(死活)적인가

이것은 강단 위의 이론이 아니다.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면 교리가 흔들리고, 교회가 분열하며, 자기 욕망이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되고, 시대정신이 성경 위에 올라서며, 말씀의 권위가 무너진다. 반대로 개혁주의적 해석 태도는 성경 앞에서 겸손해지게 하고,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게 하며, 교회의 역사적 지혜를 존중하게 하고, 여러 적용 속에서도 본문의 한 의미를 붙들게 하며, 교파 간 차이 속에서도 진리의 중심을 향해 수렴하게 한다.*14

 

 

12. 결론 — 벌거벗은 자의 겸손으로

모든 것을 문자 그대로 읽는 것이 경건이 아니다. 모든 것을 비유와 상징으로 풀어버리는 것도 충성이 아니다. 참된 개혁주의 해석은 본문이 말하는 방식대로 읽으려는 태도다. 히브리서 4장의 "하나님의 눈"은 하나님께 육체의 눈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그분 앞에서 우리의 모든 내면과 삶이 감출 수 없이 드러난다는 선포다. 창세기의 창조 기사는 신화로 해체되어서도 안 되지만, 본문의 장르와 의도를 따라 신중하게 읽혀야 한다.

 

메츠거와 현대 해석학이 지적하듯, 독자의 사회와 문화는 본문 이해에 실제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개혁주의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독자의 전제를 인정하되 그것을 성경 위에 올려놓지 않고 성경 아래에 굴복시킨다. 개혁주의는 본문의 의미가 독자에 의해 무한히 생산된다고 보지 않는다. 성령께서 의도하신 하나의 참되고 충만한 의미를, 교회가 원어와 문법, 역사와 문맥, 신앙고백과 성경 전체의 통일성, 그리고 무엇보다 성령의 조명 가운데 겸손히 발견해 가는 과정 — 그것이 개혁주의가 걷는 길이다. 교파 간의 차이는 인간의 유한성과 죄성, 역사적 조건이 낳은 현실이지만, 그 현실 너머에서 교회는 여전히 한 분 성령의 한 의도를 향해 수렴해 간다. 벌거벗은 채 그분의 눈 앞에 선 자(All things are naked and open to the eyes of him)에게 어울리는 유일한 해석의 자세는, 결국 겸손이다.

 

*[정확하게는, 메츠거의 본문비평 작업이 성경 본문 확정의 중요성을 보여준다면, 현대 해석학은 그 확정된 본문을 읽는 독자의 사회와 문화, 전제와 전통이 본문 이해에 실제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일깨운다.;  현대 해석학이 독자의 사회적·문화적 위치성을 지적한 것은 성경 해석에서 무시할 수 없는 통찰이다. 개혁주의도 인간이 죄성과 유한성 때문에 편견을 가지고 본문을 읽을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개혁주의는 이 관찰을 의미의 상대주의로 발전시키지 않는다. 독자의 위치는 해석에 영향을 주지만, 본문의 의미를 창조하지는 않는다. 성경의 의미는 성령께서 본문 안에 두신 것이며, 교회는 그 의미를 겸손히 발견해 가야 한다.]

 

 

 

각주

 

*1. (독일성서공회) https://www.die-bibel.de/en/bible/NA28,UBS5,VUL,NIV/HEB.4

 

*2. "하나님의 눈 앞에"와 "벌거벗고 드러났다"의 표현, 공통점은 하나이다.

완전히 노출되어 숨길 수 없는 상태

 

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 둘은 서로 연결되어 하나님의 완전한 전지성과 최후의 심판 앞에서 인간은 아무것도 숨길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따라서 개혁주의와 복음주의의 전통적인 해석은 거의 일치한다.

  • "눈"(ὀφθαλμοῖς)은 문자적인 육체의 눈을 뜻하지 않는다.
  • 이는 하나님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한 신인동형론적(anthropomorphic) 표현이다.
  • "눈"은 하나님의 전지성, 감찰, 심판의 통찰을 의미한다.
  • 히브리서 4:12의 "말씀이 마음을 꿰뚫는다"와 4:13의 "하나님의 눈 앞에 모든 것이 드러난다"는 서로 이어져, 말씀으로 인간의 내면이 밝혀지고 그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 완전히 드러난다는 하나의 메시지를 이루고 있다.

*3. 성경에는 다음의 표현이 아주 많다. 모두 하나님의 어떤 속성을 인간이 이해하도록 표현한 것이다.;

표현 성경구절 예시 짧은 표현 의미
하나님의 손 출애굽기 13:3 “여호와께서 강한 손으로…” 하나님의 능력, 구원, 역사 개입
신명기 5:15 “강한 손과 편 팔로…” 출애굽 구원의 능력
이사야 59:1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구원 능력이 부족하지 않음
사도행전 11: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복음 사역에 함께하시는 능력
하나님의 팔 출애굽기 6:6 “편 팔과 큰 심판들로써” 구원과 심판의 능력
신명기 26:8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으로” 이스라엘을 건지신 권능
이사야 53:1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메시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계시
누가복음 1:51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교만한 자를 흩으시는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귀 시편 34:15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의인의 기도를 들으심
시편 116:2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긍휼히 들으시는 하나님
이사야 59:1 “그의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하나님은 무능하거나 무관심해서 듣지 않으시는 것이 아님
야고보서 5:4 “주인의 귀에 들렸느니라” 억울한 자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심판자
하나님의 코 / 콧김 출애굽기 15:8 “주의 콧김에 물이 쌓이되” 홍해 사건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권능
사무엘하 22:9 “그의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하나님의 진노를 시적 이미지로 표현
시편 18:8 “그의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진노
시편 18:15 “주의 콧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임재와 심판 앞에 피조세계가 흔들림
하나님의 눈 역대하 16: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지성, 감찰, 돌보심
시편 34:15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의인을 돌보시는 하나님
잠언 15:3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모두 감찰하심
히브리서 4:13 “그의 눈 앞에 만물이…” 하나님 앞에 숨길 수 없는 인간의 내면과 삶

 

성경은 하나님의 손, 팔, 귀, 코, 눈을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 피조물과 같은 육체가 있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손과 팔은 그의 능력과 구원을, 귀는 기도를 들으심을, 코와 콧김은 진노와 심판의 위엄을, 눈은 전지성과 감찰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언어와 이미지로 자신을 낮추어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이 개혁주의가 말하는 하나님의 적응적 계시, 곧 하나님께서 우리의 수준에 맞추어 말씀하신 방식이다.

 

*4. 판단하나니(개역개정), 감찰하나니(개역한글), 판별(새한글성경)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문은, κριτικός(kritikos)로;

 

  • 분별하다
  • 판단하다
  • 드러내다

 

라는 뜻이다. 영어성경은 judges(NIV), discerning(ESV), a  discerner(KJV) 등으로 거의 동일하게 번역했는데, 그래서 단순히 "정죄"가 아니라 속을 정확하게 꿰뚫어 분별한다는 의미가 강하다.

 

*5-1. tedwiki.org의 유기적 성장 구조 위키 중 다음 항목을 참고할 것. " 칼빈(John Calvin)은 이를 하나님의 '적응(Accommodation)'이라고 설명했다."

*5-2. 또는 신적 순응이라고 한다. 번역자의 [단일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언약, 1534] 각주 중 [c]를 참고할 것. 특히, “하나님의 본질 변화”를 말하지 않고, 계시 방식의 조정만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6. 그래서 "모든 것을 문자 그대로" 읽는 것이 아니라, 저자가 의도한 의미를 문자적·문법적으로 파악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어떤 것은 문자 그대로, 어떤 것은 묘사와 비유로, 어떤 것은 영적인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는 방향은 개혁주의의 기본 해석 원리와 잘 맞는다. 다만 개혁주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강조한다.

무엇을 문자적으로, 무엇을 비유적으로, 무엇을 구속사적·영적으로 이해할지는 독자의 판단이 아니라, 본문의 문맥·장르·문법·역사적 배경과 성경 전체의 계시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본문이 말하는 방식대로 읽는다"는 것이 개혁주의 해석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7. "창세기 6일 창조"는 개혁주의 안에서도 견해가 다양하다. 공통적으로는 다음을 인정한다.;

  • 하나님이 실제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 아담과 하와는 실제 역사적 인물이다.
  • 인간의 타락도 실제 사건이다.

그러나 "6일"을 어떻게 이해할지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 24시간의 실제 6일로 보는 견해(젊은지구 창조론)
  • 날(day)을 긴 시대나 하나님의 창조 단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는 견해
  • 문학적 구조를 강조하는 Framework View

모두 자신들이 성경 본문에 충실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즉, 개혁주의 전체가 반드시 하나의 견해만을 공식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논의는 창세기의 역사성과 아담의 대표성, 타락의 실제성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8. 초대교부들의 "하나님의 눈"에 대한 해석;

크리소스토무스;  하나님의 완전한 지식(하나님께는 숨길 것이 없다.)

아우구스티누스;  하나님의 전지하심(divine knowledge)

오리게네스; 모든 피조물을 완전히 꿰뚫어 보시는 신적 통찰

 

*9. 다음에서 웹사이트에서 각각 확인할 수 있다.;

*9-1. "penetrating even into our inmost thoughts." 를 찾을 것.

https://www.studylight.org/commentaries/eng/cal/hebrews-4.html

(그러나 우리가 진실하고 진심 어린 애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관점을 취하면 모든 어려움이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에 우리의 가장 깊은 생각까지도 꿰뚫어 보는 역할을 부여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인간의 은밀한 생각과 감정이 드러난다, 즉 진정으로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여야 한다.]

 

칼빈은 두 극단을 모두 피하려 했다.;

  • 모든 것을 억지로 비유화하는 해석도 반대했고,
  • 모든 표현을 문자적으로만 읽는 것도 반대했다.

"하나님의 눈"은 인간이 이해하도록 사용된 표현이며, 그 의미는,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의;

  • 생각
  • 의도
  • 숨은 죄

까지 모두 드러난다는 것이다. 칼빈은 특히 히4:12와 4:13이 연결된다고 말한다.

  • 말씀은 마음을 해부한다.
  • 하나님은 그 결과를 모두 보고 계신다.
그는 여기서 “눈 = 전지성/심판적 감찰”이라고 교리 항목처럼 길게 풀어 쓰기보다는, 본문 흐름 속에서 하나님 앞에 감춰진 것이 없고 말씀은 인간 내면을 드러낸다는 식으로 주석했다.

 

*9-2. Τοῖς ὀφθαλμοῖς αὐτοῦ , “to the eyes of him.”를 찾을 것.

https://www.studylight.org/commentaries/eng/joc/hebrews-4.html

(히브리서 기자는 이전의 비유를 이어가며, 앞서 설명한 비유를 통해 모든 것의 증거를 말씀의 전지하심에 귀속시킨 후, 그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바라보시는 눈을 언급한다. 두 표현 모두 은유적인 것으로, 그리스도의 전지하심을 선언하고 있으며, 마지막 구절에서 우리가 이 모든 일에서 그분을 존중하는 것을 통해 그분을 더욱 자세히 묘사한다.)

존 오웬은 이 표현을 그리스도/하나님의 전지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서 결산해야 한다는 심판적 맥락 속에서 해석했으며, 그 결과 인간의 은밀한 내면까지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이 드러난다고 설명한다.

 

*10. 그의 연구는 "원래의 본문이 무엇이었는가"에 집중되어 있었고, 동시에 독자는 자신의 문화와 전제를 가지고 본문을 읽기 때문에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인정했다. 이는 현대 해석학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관찰이다. [메츠거의 본문비평은 본문 확정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그 이후에도 현대 해석학이 말하는 독자 위치성 문제가 남는다]. 개혁주의도 사실 이 점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이 점에서 개혁주의는 오히려 "내 마음대로 해석하지 말라"는 경계가 강한 전통이다.

  • 인간은 죄인이라 편견과 전제를 가지고 성경을 읽는다.
  • 그래서 개인의 해석은 언제든 오류가 있을 수 있다.
  •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독창적인 해석보다 교회의 역사적 신앙고백과 성경 전체의 가르침을 존중해야 한다.

*11. 반면 개혁주의가 강조하는 원칙은 매우 분명하다.;

성경은 객관적인 의미를 가지며, 그 의미는 저자의 의도와 성령의 계시에 의해 정해진다. 독자가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현대의 일부 독자반응비평(reader-response criticism)처럼 "의미는 독자가 만든다"는 입장과는 거리를 둔다. 결국 개혁주의의 이상은 다음과 같다.;

  • "내 문화가 이렇게 읽게 한다"에서 멈추지 않고,
  • "성경 저자는 무엇을 말했는가?"
  • "초대교회는 어떻게 이해했는가?"
  • "종교개혁자들은 어떻게 이해했는가?"
  • "성경 전체는 이 본문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이를 함께 살피며 자신의 전제를 계속 교정해 가는 것이다. 이 점에서 필자가 진행하고 있는 여러 번역본 비교, 초대교부와 종교개혁자들의 해석 조사, 원어 확인 같은 작업은 바로 이러한 "자기 해석을 역사적 교회의 검증 아래 두려는" 접근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이 해석의 오류를 줄이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되는 방법 중 하나이다.

 

*12. 이것은 개혁주의에서는 매우 자연스러운 생각이다.;

성경의 저자는 궁극적으로 성령이시다. 그렇다면 성령께서는 본문마다 하나의 참된 의도를 가지셨을 것이다. 인간은 문화와 전제 때문에 서로 다르게 이해하지만, 성령의 조명과 올바른 해석 원리를 따라간다면 점점 그 하나의 의도에 가까워질 수 있다.

 

*13. 이전 글을 참고할 수 있다.; 

1) 기독교의 본질은 무엇인가? ㅡ 기독교의 본질: 교파를 초월한 공통 신앙 https://ted-wiki.tistory.com/84

2) 교회를 교회이게 한 것: 이천 년을 가로지른 하나의 고백 ㅡ https://ted-wiki.tistory.com/191

 

*14. 다만 개혁주의는 그 수렴이 인간의 능력만으로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보지 않고, 성령의 조명과 공동체의 검증, 그리고 역사 속 교회의 신앙고백을 통해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이해한다는 점을 함께 덧붙일 수 있겠다.

 

 

 

 

 

 

 

+ Recent posts